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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캐나다 몬트리올, 유키-트리옹페 빌딩.
트리옹페 사의 본사가 있던 이 빌딩은 유키 다카오가 트리옹페 사를 인수하면서 유키-트리옹페 빌딩이 되었다.
이곳에서 다이쇼와 세린, 재준, 재필, 현림 등은 미국인, 캐나다인 은행가들과 회담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수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은행가들은 다이쇼에게 들이댄다. 모든 통역은 세린이 했다.
“이미 23억달러(3천억엔)의 재산을 매각하기로 했지 않습니까.” 다이쇼가 대답했다.
“그걸로는 트리옹페 사의 부채는 커녕 당신의 부채도 충당하기 힘듭니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모든 해외 자산은 물론, 일본내의 자산들도 모두 우리에게 넘기시지요.” 은행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 재산들은 담보가 아니지 않소!” 다이쇼는 화를 내며 대답했다.
“우리는 돈을 받는 게 목적입니다. 담보를 차지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요. 세계 최고의 갑부께서 엄살이 심하시네요.” 한 명이 비꼬듯이 대답한다.
“모두 갚아야 할 부채가 최소한 70억 달러가 넘는군요.”
“트리옹페 사의 매입을 취소한다면?” 다이쇼가 제의를 했다.
“이봐요. 트리옹페 사를 무너뜨리지 않은 건 오로지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이 손들고 나가겠다면 트리옹페 사는 그날로 망하지요. 당장 몇십억 달러를 아낄 순 있겠지만, 당신의 체면은 어F게 되겠습니까?”
“이건 나를 죽이려는 음모야!” 다이쇼는 서툰 영어로 직접 말했다!
“할 수 없군요. 돈을 이번 달 말까지 변제하지 않으시면, 일단 트리옹페 사의 자산들부터 모두 차압하고, 모자라는 건 당신의 자산으로 충당하겠습니다.”
은행가들은 화난 듯이 나간다.
다이쇼는 이나모리의 부축을 받으며 나가고, 재준이 재필에게 말했다. “다이쇼가 너무 오버했어. “ “글쎄 말이야. 은행가와 협상을 하려는 게 아니라 싸우려고 드니.”
하지만 세린은 다이쇼 편을 든다. “저렇게 세게 나가야지 약하게만 나간다고 이길 순 없어.”
“너는 왜 계속 다이쇼 편이야?” 재준이 묻는다. “다이쇼 말이 다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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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현승의 사무실
“어떻게 네가 여기 있는 거야? 여긴 어떻게 알고.” 현승이 묻는다.
“켄린(현림)이 이야기해 줬어요.”
“너는 나를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잖아? 날 어떻게 믿고 여기까지 왔어?” 현승이 말했다.
“전 더 이상 중국에 돌아갈 수 없어요. 그렇다고 집에 더 있고 싶지 않고요. 나를 자기 맘대로 손녀다 아니다 하는 할아버지가 싫어서요.”
그녀는 차마 세린과 다이쇼 사이에 있는 일을 입에 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떻게 살 건데?” “더 이상 끌려다니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
“그래서 나랑 살 생각이야?” 현승이 묻는다.
법적으로 현승은 한국인이고 샤오여는 일본국적이다. 중국국적은 이미 상실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 같이 못 살 건 없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는 도쿄에서같이 보석이다 비싼 옷이다 살 수 없어. 25억엔은 모두 사업자금이야. 내 방 자체도 그리 좋지 않은데?”
“중국에서는 여기보다 못한 환경에서도 잘 살았어요. 못 살 건 없어요.”
그녀가 한국에서 살 생각이 단호해 보였다.
“너는 한국을 몰라 . 이곳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살벌한 곳이야.”
“괜찮아요.”
그녀의 의지는 단호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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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의 어느 중국요리점.
이곳은 현승이 가끔씩 찾는 곳으로, 중국에서 데려온 주방장이 요리를 잘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현승은 샤오여와 함께 이곳에 들어왔다. “오늘은 량명화 주방장님이 안 계신가요?”
“아니 계십니다.”
량명화? 어디서 들은 이름 같기도 하다 (1회 참조) 샤오여가 말했다. “주방장 이름까지 알아요?” “아, 음식이 맛있어서.”
“오늘은 제일 비싼 요리를 시킬까 합니다. “ 현승은 단골인 듯했다. 주인이 말했다. “옆에 계신 분은.. “”예, 그렇게 됐습니다.”
샤오여는 물론 한국어를 모른다.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었다.
잠시 후 메뉴를 가져왔고, 현승은 전복 요리를 시켰다.
그 시절만 해도 아직 서울에 정통 중국식 요리는 없었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중국요리만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입맛에 맞을 지는 몰랐지만, 해 봐야만 했다.
“일본에서 먹는 중국요리와 또 다르네요.” “그렇지? 거기서는 맘대로 나가지도 못했었는데. 그런데 한국 오는 동안 위기는 없었어?”
“이나모리가 캐나다에 갔기 때문에 괜찮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집안의 기강이 옛날만 못해요.”
그날 그들은 중국요리는 물론, 빼갈까지 마셨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과의 무역이 그리 원활하지 않았으므로 중국술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어떻게 구했는지 현승은 물론 샤오여도 오랫만에 중국술을 많이 마셨다.
“너 그렇게 술을 잘해?” “동북에선 술 안 먹으면 겨울 못 나요.” 그녀는 천연덕스레 대답한다.
오히려 고급술이 아니라서 더 좋아하는 거 같았다… 입맛은 죽어도 못바꾼다.
현승은 술김에 말했다. “주방장 좀 와서 인사 좀 하라고 하세요. 감사를 표하고 싶으니까.”
오늘 밥값, 술값이 거의 백만원 (주:20년 전에 백만원) 가까이 나왔다. 주방장이 인사를 할 만도 하다.
주방장이 나왔다.. 그런데 얼른 보니 샤오여와 인상이 닮은 거 같기도 하다.
현승이 중국어로 말했다. “오늘 음식 참으로 좋았어요. 제 여자친구도 맛있다고 하더군요.”
명화는 중국어로 대답한다. “뭐가 제일 맛있었어요?”
샤오여는 그녀를 보자 왠지 모를 느낌이 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이지만, 낯설음이 적었다. 告?
“전복요리가 제일 맛있었어요.”
“최대한 능력을 발휘해서 만들었으니까요.”
“혹시 이름이? “ 현승이 대답했다. “양샤오여라고 해요.”
만약에 그가 일본 이름을 댔다면, 그들의 인생은 결정적으로 달라질 뻔 했다. 중국 신문에도 유키 다카오가 중국에서 손녀를 데려갔다는 것은 크게 보도되었지만, 그 손녀의 이름은 가명으로 양여춘이라고 나왔었기 때문에, 그녀도 그런 줄만 알았기 때문이다.
현승은 인사를 하고 명화를 내보냈다. 다른 손님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의 음식이 마음에 드네요.” 샤오여가 말했다. “그런가요”
샤오여와 명화의 만남은 그 단 한 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현승 일행이 나가고 그날 장사가 끝나자, 사장은 명화의 가슴을 더듬으며 묻는다.
“명화도 중국에 딸이 있어? 저 아가씨를 보는 눈이 좀 달랐는데?’
“있어요… 못 본 지는 오래 됐지만.”
“그 애는 몇 살이야?” “살아 있다면 저 애와 똑같았을 거예요.”
“중국에서 결혼은 했었어?”
“예… 골병이 들어서 사내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과 했어요. “ 명화는 중국에서의 기억을 떠오르기 싫어하는 듯했다.
“일본 사람의 아들이었다는데, 밤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학대는 엄청 했어요.”
“그래서? “
“조선 사람과 잠자리를 몇 번 했어요. 그래서 딸이 태어났죠.”
“남편이 뭐라고 안 했어?” “사실 남편의 딸인지 아닌지는 저도 몰라요. “ 명화는 생각했다 . “남편이 뭐라고 할까봐 아이 낳아 놓고 그냥 도망쳤어요. 그 다음은 기억에 없네요.”
“그 애가 남편을 더 닮았던 거 같아, 애인을 더 닮았던 거 같아?”
“기억에 없어요… 낳고 나서 그날 밤이 되기 전에 버리고 갔으니까요.”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양징춘(1회 참조)에게 부탁한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사장은 명화를 끌어 안으며 말한다. “기억할 거 없어 . 어차피 지난 일이니까.”
이 대화의 내용을, 유키 다카오나 현승 , 샤오여 등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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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소재, 유키 가문의 대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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